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방위군 사건 (문단 편집) == 사망자 수 == 이승만 정부의 공식 기록에는 1,000~2,000명 사망이라고 했지만, 당시 소문으로는 5만 ~ 10만 명 가량이 죽었다고 했다. [[중앙일보]]가 간행한 <민족의 증언>에는 대원 50만 명 중 20%가 병사 혹은 아사했다고 했고, [[부산일보]]가 간행한 <임시수도 천일>에는 사망자가 5만여 명이라고 서술했다.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승만을 열렬히 찬양하는 유영익 교수조차 9만 명이 굶어죽고 얼어죽은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말했다. 당시 [[서민호]] 의원은 국회에서 "수천 명이 굶어 죽어 갔고, 귀환 장병들도 20%는 생명유지가 불가능하며, 80%는 노동이 불가능"이라고 발표하여 대내외 기관에서 인용하는 공식 자료가 되었다. [[참여정부]]에서 조직한 [[진실·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]]는 5만~ 8만 명이 사망했다고 추산했다. [[http://news.khan.co.kr/kh_news/khan_art_view.html?artid=201009072202225&code=940100|#]] 안타깝게도 구체적인 사망자 수는 정확하게 계측할 수 없다. 당시 국회조사에 따르면 사망자 상당수가 '''행려병자'''로 처리되었고, 약 100일 동안 각종 질병, 동상, 아사, 도주 등 이유로 전체의 40%에 달하는 27만여 명이 사라졌다. 과거사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그동안 다수 매장지가 개발되면서 유해가 발굴되었는데 전부 '''무연고자'''로 처리되었다. 참고로 미국 통계에 따르면 [[6.25 전쟁]] 내내 한국군 사망자는 14만 명 정도이다. [[http://www.voakorea.com/a/article----625----124496254/1348359.html|#]] 다만 남정옥이 지은 <6.25 전쟁시 예비전력과 국민방위군>을 보면 당시 육군이 보도하고 발표한 사망자 1234명이란 수치가 맞고 나머지 실종자들은 중간에 집에 돌아갔다고 설명했다.[* 다만 저자 남정옥은 6.25 서적을 다수 집필하긴 하였지만, '우남이승만연구회 이사'로 이승만 대통령의 군사 외교, 국가수호노력 등 책을 제작하는 이승만 숭앙주의자다. 이 문서만 해도 김윤근 방위사령관이 신성모 장관의 사위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는 것에 중점을 두었는데, 책에는 그런 내용은 일절 없고 김윤근 사령관과 윤익헌 부사령관은 지청천의 대동청년단 출신이라며 [[지청천]]과 국민방위군 간 관계에 더 주목했다.] 이 사건을 다룬 재판조차 워낙 빨리 끝나 버리는 바람에 사건의 진상도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채 묻혔고, 오늘날까지 수수께끼로 남았다.[* 이런 사항은 국민방위군만큼이나 참혹했던 [[보도연맹 학살사건]]도 마찬가지다. 1961년 5월 16일 [[박정희]]가 [[5.16 군사정변]]을 일으키면서 국방부에 보관된 보도연맹 학살 관련된 자료들을 모두 없애 버리는 바람에 보도연맹 학살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도 제대로 알 수 없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